2017. 5. 1. 00:56

솔직히 글을 잘 쓸 자신이 없다. 그냥 개인적인 감상을 적당히 쓰기로 했다.

* 책의 스포일러 포함-




김연수의 원더보이는 김연수 작가를 좋아하던 세영님으로부터 5년 전 봄에 받은 책이었다.


그 당시 내가 세영님께 행복 좀 달라고 많이 징징대서 큰맘먹고 주셨다는 글이 쓰여있었고,
별과 양자론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흥미로워할 것 같다며, 나중에 감상문을 써오라고 했다.
이런 말을 하면 더 잘 읽겠지...? 하며....ㅎㅎㅎ....

그 이후에도 얼른 감상문을 내놓으라는 압박(?)을 종종 받았는데 5년이 지났다..


큰맘먹고 주었다는 게 느껴졌던 것이 당시 2012년 3월 말에 책을 구매한 영수증이 책 뒤쪽 날개에 들어있었고,
내가 그 책을 받은 시점은 4월 초중순이었다.
책을 산 지 불과 10일만에 다른 사람한테 주었으니, 정말 큰 맘 먹고 주신 거구나 했었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뭔가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책을 읽는 데에 시간을 많이 내질 않았던 것인지도.
조금 읽다가 되게 자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서 무섭다고ㅋㅋㅋㅋㅋㅋ 했었고..
지금 생각하면 수많은 타임 킬링의 시간들 중 몇 시간만 할애했다면 그 당시에 충분히 다 읽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당시에는 나의 생각이 어렸고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만한 능력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지난 5년간 책장에 꽂아두고도 죄책감과 더불어 다시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에 종종 꺼내보곤 했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언젠가 한동안 그 책을 가지고 다니다가 비가 왔고, 가방도 비를 맞아서 책도 젖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의 윗부분이 쭈글쭈글해져있다.


군대에 있을 때도 그 책을 군대 숙소에 가져다 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그렇게 시간이 많았는데.


게다가 작년 설 직후에도 책장에서 꺼내어 책에 써주신 편지를 사진으로 찍어두고 꼭 다시 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 같다.
아직도 그때 찍어둔 사진이 핸드폰에 남아있음...



아무튼 지난 5년 간 종종 원더보이를 다 읽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죄책감도 있었고,
그보다도 그 책을 볼 때마다 내 스스로도 죄책감이 들었던 날들이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책을 좀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책장에서 꺼내두었다가,
페이스북의 기록을 통해 5년 전에 제가 이 책을 받았었네요!! 하고 말했다가
"그나저나 다 읽으셨는지...?"라는 질문을 받았고.. 이젠 진짜 더 부끄럽지 않아야지 하는 마음에 냉큼 읽기 시작했고,
지난 5년 간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술술 읽혔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1) 왜 그때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을까.
2) 그런데 5년 전의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이해 못 하지 않았을까.
3) 지금이라도 이 책을 읽어서 너무 다행이다.
4) 그의 표현과 묘사하는 방법과 상상력 모두 두고두고 다시 읽어보면 좋겠다.
등등... 어렸던 나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예전에도 전공책보다 소설을 많이 읽어야지 했던 계기가 있었는데, (자기계발서는 절대 안 읽음...)
그런 비슷한 감정도 좀 들고!


지난 5년간 도서관에서도 책을 많이 빌려보았는데도 이 책을 읽지 않았던 것은
어떤 듀가 있지 않기 때문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나는 아끼는 것을 뒤로 미뤄두는 습성이 있는데 너무도 아껴서
그 희열을 아끼고 아껴서 필요한 순간에 얻고자 하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는 궤변..... 하고 변명해본다..ㅋㅋ)


그러고 보니 기억에 남는 소설 중에 하나는 작년 가을에 읽었던 '소년이 온다.' 그리고 '채식주의자' 등등.. 
나름 지난 1년 사이에도 소설책을 읽었다. 근데 왜 원더보이는 뒤로 미뤄뒀을까...


그동안 다양한 한국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늘 등장하는 것이 7-80년대의 시대배경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항상 7-80년 얘기가 나와서 지겹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얘기가 아니면 글이 안 되나하고.

하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세상에서 그런 얘기를 외면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임을 최근에 더욱 절감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소년이 온다'를 읽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감히 그런 말을 할 자격조차 없다.)




배경은 1984년으로 시작한다. 독재정권이 끝나고 518 민주화운동이 끝난지도 여러해가 지났기에 조금 관련없는 내용이 나오리라는 기대는 이내 틀렸음을 깨달았다.


주인공인 15살 소년 정훈은 자신이 아이일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과일을 파는 아버지와 지내는데 아빠와 트럭을 타고 가며 소원을 하나씩 얘기하다가 교통사고로 아빠를 잃게 된다. 주인공은 그 사고를 겪고 나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을 얻게 되는데.. 2012년에 처음 읽었을 때는 중간까지 읽고 더 읽지 않아서인지 어려서인지 깨닫지 못 했으나, 초능력이라고 표현된 것이 공감능력이 극대화된 경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면 극대화가 아닌 지나치게 어린 형태로 나타났다거나. 물론 이 부분은 책에도 나오지만. 그래서 남들의 생각을 읽는 능력(?) 밖에 없음에도 TV에 나와서 공감을 통해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던 게 아니었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고를 겪은 후 생존자가 갖게 되는 어떤 트라우마가 능력?으로 발현되기도 하는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장애인을 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어떤 특정 장애를 얻은 사람은 다른 부분에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다고들 얘기하는데, 예를 들면 시각 장애인은 점자를 읽기 위한 촉각이나 청각 등이 더 발달한다거나.. 그것이 사고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긴 것일까, 아니면 생존을 위해 노력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된 사례는 극히 일부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트라우마에 고통받아가며 살아갈텐데.. 어렵다ㅠ

그래서 이 책에서는 자신에게 공감해주고 감싸줄 어머니, 아버지를 잃은 대신 초능력의 형태로 발현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게 될 때부터 그 능력이 점차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이전에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들이 세월호 가족들에게 공감하고 위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나, 911테러 희생자 가족들이 세월호 가족들을 위로했던 것이나, 그런 사례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들의 연대가 고맙고 멋졌는데.


초능력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공감능력이 극대화된 것이라고 보면 저랬겠지만, 또 한편으론 점차 시간이 지나고 성장해가면서 '초능력'을 잃어가는 건 또 한편으로 어린 날의 미성숙함 같은 걸 의미하는 느낌도 조금 있다. 아직 세상에서 깨닫지 못 한 가치들을 하나둘씩 깨닫게 되면서, 소중한 것을 깨닫는 느낌?



사회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초기부터 등장한 권 대령부터 이만기 등의 모습은 정말 역겨우면서도 현실에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군대를 경험하고 나서 읽어서 그런지 저런 행동을 할 것이라 예측이 되는 것도 있었다. 그에 반해 강토(희선)와 재진은 내가 지향하고 싶은 모습인데, 나는 얼마나 당당한 사람일지. 늘 말해오던 정의로움을 지키는 사람이 맞는지.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이승환의 '물어본다'의 가사를 곱씹곤 한다. 앞으로도 늘 스스로에게 물어볼 것이다.


많이 닮아있는 건 같으니, 어렸을 적 그리던 네 모습과

순수한 열정을 소망해오던 푸른 가슴의 그 꼬마아이와 어른이 되어 가는 사이 현실과 마주쳤을 때 


도망치치 않으려, 피해가지 않으려,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그런 나이여 왔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부끄럽지 않도록, 불행하지 않도록 


푸른 가슴의 그 꼬마아이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니


부조리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에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그런 나이여 왔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부끄럽지 않도록, 불행하지 않도록, 않도록


그래서 나는 개혁에 앞장설 것인가, 떠날 것인가. 이전에 침묵하고 동조하는 사람들을 비겁하다고 욕했는데. 어느 순간 한계를 느끼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다보니 그렇게 내가 욕해놓고 떠나는 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4년 전 영국의 컨퍼런스에서 만난 교수님의 얘기도 종종 곱씹곤 한다. 자신 주변의 사람들도 2-30대에는 그렇게 문제를 느끼고 변화를 원했으면서 3-40대가 되고 더 나이를 먹으니까 변화도 원하지 않고 동조하고 있던 사람들이 많다며. 그래서 본인은 그런 사람들과 교류를 끊었다고 했다. 그때 그 말은 별 거 아닌지 몰라도 지난 4년 간 매 순간마다 스스로를 다잡게 하는 그런 말이었다.




주인공의 엄마, 아빠가 원래 했던, 새를 잡아 기록하고 인식표를 붙이는 등의 일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현실적이지는 못 한 것 같아도 꽤 낭만적인 것 같았다. 나는 고등학생 때만 해도 지구과학을 가장 좋아했었고, 자연과 함께하는 걸 좋아했었다. 그래서 고1 때 제주도 자연탐사 활동이나 중3 때 한탄강 자연탐사를 갔을 때 정말 열심히 즐겁게 했었던 기억이 난다. 제주도에선 자연의 신비함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것이 정말 즐거웠고, 친구와 둘이 탐사하다가 우리가 남겨진 것을 모른 채 버스가 먼저 출발했다가 되돌아 오는 일도 있었다. 한탄강에서는 강에서 물고기도 잡고, 주상절리도 보고, 식물도 관찰하고. 그때 썼던 노트를 다시 돌려받고 싶었는데, 내가 썼던 노트가 우수사례로 선정되어서 교육청으로 제출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 노트를 돌려받지 못 함... 솔직히 교육청에 그런 노트가 가봤자 결국 폐기되고 말텐데, 한 아이에게는 그 노트가 정말 소중한 기록이었을텐데 그렇게 사라져버린 게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쉽다.


그와 별개로 요즘 주변에서 너무도 자주 목격하는 자연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행위를 보면 참 한숨만 나온다. 군대에 있을 때 미국 사람들이 그러는 모습이 너무 싫었는데, 지금 있는 곳에서는 더 심하다. 머그컵을 가져다두고 쓰면 되는데도 종이컵을 사용하고, 종이컵도 한 번 쓰고 버리지 않아도 하루 종일 여러번 재사용이 가능함에도 새로 종이컵을 뽑아쓰고, 잠깐 물 마시는 데에 납작한 종이컵을 펼쳐서 쓰지 않고 이미 원뿔대 형태로 되어 있는 컵을 사용해서 바로 버리고, 1시간 동안 쓰지 않을 컴퓨터 모니터를 켜둔다거나, 대기전력이 꾸준히 소비되는 제품을 꼽아둔 멀티탭을 켜두고 금요일에 퇴근한다거나. 나의 기준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일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고 몇 번 얘기해보았는데, 그들에게는 문제 의식이 없어서 왜 문제인지조차 깨닫지 못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학교 식당 안에 있는 교직원 식당에서 선생님들이 나올 때마다 매일 종이컵에 커피를 들고 나오시길래 그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아서(?) 종이컵 하나의 탄소발자국(인간의 활동이나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직접 또는 간접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총량 - 출처: http://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0711N032)이 12g이라는 글과 어떤 곳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그림 자료를 교직원 식당에 들어가 종이컵이 놓여진 식수대에 붙여놓았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도 나름 패기 넘쳤구나. 며칠 정도는 일시적으로 종이컵 사용이 줄었던 것 같은데, 누군가 그 프린트물을 떼어냈고 다시 무관심해진 걸로 기억한다. 그때 실망감과 더불어 약간 괴리감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되게 심각하고 조금이라도 지구가 덜 아팠으면 좋겠는데,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는 것에 대해. 그때 이미 한계를 느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우주와 별.. 은 어렸을 적부터 꿈이었다. 우리도 우주의 일부이지만 왜 우리는 우주라는 단어를 지구 밖의 세계를 칭할 때만 우주라고 하는 걸까, 우리는 우주의 일부임을 왜 늘 망각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늘 했었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우주와 관련된 이야기는 하나하나 너무 좋았다. 평소에 생각해보던 얘기들을 해주는 건 물론 생각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깨닫게 해주었다. 

항공기도 멋졌지만 그런 우주를 알아가고 싶어서 항공우주공학을 공부하기로 했었고, 사실 그러려면 천체물리학을 공부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보다 더 공부가 안 맞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길에 가지 않을 걸 후회하진 않는다. 우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좋았고, 그런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책으로 읽었을 때도 좋았고, 그걸 TV 프로그램으로 보았던 수업도 참 좋았다. 그 순간 내가 우주의 티끌 하나에 불과하지만 나도 그 일부에 있다는 게 좋았다. 지구의 기준에서 일식, 월식을 보는 것 같은 얘기가 아니라 우주 전체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도.

그래서 오래 전에 나온 스윗 소로우의 GRB 080913이라는 노래도 엄청 좋아했다. GRB 080913은 2008년 9월 13일에 발견된 128억 광년 떨어진 초신성인데, 가사도 우주의 경이로움과 우주 먼지에 불과한(?)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내용이라 들을 때마다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가사: http://www.melon.com/song/detail.htm?songId=2104535&ref=W106)


이것말고도 고등학생 땐 친구와 학교 천문대에 가서 밤하늘을 보곤 했는데 지금 떠올려봐도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좋은 기억 중 하나이다. 아무도 우릴 신경쓰지 않았고 자유롭게 우리가 보고 싶은 것들을 보곤 했다. 물론 나는 그때도 지금도 별자리나 천체에 대한 지식이 많지는 않다. 그때의 좋은 기억 때문에 작년 여름에 독일에서 지낼 때 천문대에 가보려고 그렇게 기를 썼는데, 결국 밤엔 가보지 못 해서 매우 아쉬웠다.(아쉬워서 낮에는 갔다..) 한국보다 하늘도 깨끗해서 별이 쏟아질듯한 하늘이었는데. 다음에 다시 유럽에 갈 기회가 있다면 천문대에 꼭 갈 것이다.

밤하늘을 보았던 기억은 여럿 있다. 2013년 여름 독일에서 유성우가 엄청 떨어지는 날이라길래 주변에 아무런 건물도 없고 허허벌판에 수풀이 우거진 곳에 혼자 가서 하늘만 3시간 동안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간간히 보았던 것 같은데 이게 내가 본 게 맞나 싶어 의심하고 또 기다리고 하다보니 기억에 명확히 남는 건 없지만, 비행기도 많이 지나갔었고 주변에 조명도 없고 무섭기도 했었던 그런 날이었다.

또 기억나는 건 2010년 축제 때였다. 천안함 사건 때문에 봄 축제가 연기되어 가을에 열렸는데, 새터 친구들과 놀다가 밤늦게 기숙사로 돌아가던 길에 아직 잔디가 깔리지 않은 학부 운동장에 서서 2시간 동안 하늘만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 좋지 않은 기억이면서도 좋았던 때는 2014년 여름-가을이다. 논산과 의정부에서 바라보던 하늘. 그땐 달이 차오르고 빠지는 것을 보면서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도 같은 달을 보겠지 하며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도 참 좋았지만, 의정부의 하늘은 잊지 못할 것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운동하다 보면 남쪽 하늘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 같았던 오리온 자리. 서울과 바로 경계지점에 위치해있는데도 그렇게 하늘이 깨끗할 수가 없었다.


조금 다른 차원으로는 2007년엔가 서울시과학탐구실험대회엔가 나가서 지필시험과 실제 실험을 하고 보고서를 쓰는 대회에 나갔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 지필 시험에 글을 좀 길게 쓰는 게 있었다. 그때 무슨 과학문학상 같은 걸 받은 공상소설을 읽었는데 거기에 알파 센타우리가 나오고, 그런 우주에 대한 소설이었다. 지금은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서 거기다가 얼마 전 읽은 소설 얘기를 하며 알파 센타우리 등의 얘기를 썼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최우수상을 받았었다! 는 자랑....인가... 근데 전국대회에 나가서 참가상 받고 온 건 안비밀...ㅎ



아무튼 뭔가 책 애기보다 다른 얘기가 더 길어진 것 같은데.. 책도 인상적이었지만 그와 더불어 나의 생각이 정리되는 과정이나 떠오른 것들,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정리해 볼 수 있었다는 것에 도리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그런 것들을 많이 까먹고 지냈는데, 원더보이 덕분에 다시 떠올리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결국 책도 스스로 필요한 시기에 찾아오는 것 같다.(고 망상을 해본다.) 세영님도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에 대한 얘기를 고등학생 때 썼던 일기에도 쓴 적이 있었다고 했다. 뭐 책은 다시 읽어볼 생각이고, 그래도 인상적인 구절들을 몇 가지 적어두면 어느 정도 기억이 떠오를 것 같아서 정리해둔다. 인용한 글에는 요즘 시대에도 생각해볼만한 내용도 종종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 지난 겨울 광장에서 부르던 그 노래가 떠오르게 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아, 새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라고 '새인'이라고 지은 이름도 나는 너무 맘에 들었다.




자극적일 수도 있지만 기록해두고 다시 보고 싶은 문구들 몇 개를 옮겨둔다. (저작권법에 문제가 되려나ㅠ)

소위 말하는 감명 깊은 부분도 있고, 그냥 기억해두고 싶은 부분도 있고, 공감이 많이 되는 부분도 있고. 글이 너무 예쁜 부분도 있고.


- "나는 소원을 말하는 게 좋았다. 그 소원을 하나하나 이루다보면 어른이 되리라 생각했다. 아니면 그 반대로 어른이 되면 그 소원을 다 이룰 수 있게 되거나. 열다섯 살 무렵, 어른이 된다는 건 내게 그런 뜻이었다." (뒷표지)


- "(서울대공원의 각종 동물이 죽었다는 기사를 '비망록'에 스크랩해둔 것에 대해) "옛날에 내게 '오랑'은 말레이어로 사람이란 뜻이고 '우탄'은 숲이란 뜻이라는 걸, 그래서 오랑우탄이란 숲속의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걸 말해준 사람이 있었거든. 그 사람을 잊지 않으려고."" (p. 23)


- "누구에게나 한 번은 그 모든 별들의 개수를 헤아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니까요. 딱 한 번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별들이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이 찾아오니까요. 그때 별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물끄러미 우리를 내려다봅니다.

상상해보세요.

그렇게 많은 별들이 우리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10000000000000000000000개의 별들이.

10000000000000000000000개보다 더 많은 별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중략)

"이 우주 한 귀퉁이에 있는 지구라는 희미한 푸른 점을 향해. 그 작은 별에서 길어봐야 겨우 1백 년 정도를 살았을 뿐인 한 인간을 향해."

(중략)

"아빠는 평생 매초당 7조 5499억5047만2325개의 별빛을 받으면서 살았던 것이에요. 그렇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1초였을 거에요." (p. 38-41)


- "그 어떤 일도 내게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게 아주 황당한 몽상이라고 해도 나는 꿈꾸는 일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 우주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들, 어떻게 해도 할 수 없었던 일들, 불가능한 일들을 나는 계속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양자론의 세계에서 살고 있으니까. 계속, 나는 쉬지 않고 생각할 것이다. 다른 우주에 사는 나를 위해서. 다른 우주에서는 여전히 시장에서 과일을 팔고 있을 아빠를 위해서. 또다른 우주에서는, 어쩌면 거기서는 우리와 함께 살고 있을 엄마를 위해서. 그 가능성을 위해서." (p. 122-123)


- ""이렇게 서늘한 밤은 숫자로 76이야."" (p. 165)


- "그쯤에는 나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말하지 못하는 일이 하나쯤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불어 말하지 못한 그 마음을 이해받기란 무척 힘들다는 사실도." (p. 189)


- ""절망적이에요.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누구 하나 괴로워하질 않잖아요. 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대해서는 경외하면서도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죠. 왜냐하면 이 나라에서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 자체가 탄압의 대상이고 이적행위니까요. 그러니 고통받는 사람들은 더욱 고독해질 수밖에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국가는 왜 자기 안에 고통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면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이적행위자로 몰 이유가 없지 않나요? 우리에게는 이런 국가 말고 다른 국가를 선택할 권리가 없는 건가요? 만약 그런 권리가 우리에게 없다면, 무자비한 국가폭력에 겁을 먹고 타인의 고통에서 눈을 돌리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건 타인의 고통을 공포보다 더 강하게 느끼게 만드는 일이에요."" (p. 190-191)


- ""모든 고통은 공포보다 더 강해요. 그게 자신의 고통인 한에는. 하지만 아무리 엄청난 고통이라고 하더라도 나의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경우는 없어요. 그게 우리의 한계에요. 그 한계 때문에 우리는 이런 국가를 가지게 된 거에요.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면, 어떤 국가나 권력도 개인을 억압할 수 없었을 거에요. 타인의 고통을 공포보다 더 강하게 느껴야만 한다는 건 그런 뜻이에요. 지금과 다른 국가를 원한다면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자기 것처럼 여겨야만 해요.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다른 방법도 있을 거에요. 그건 사람들에게 압도적인 고통을 보여주는 일이겠죠."" (p. 191)


- ""분신 같은 것이겠죠." (중략)

"그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 그건 인간의 고통을 스펙터클화하는 일이야. 희생을 물화시키는 것이야. 고통이란, 희생이란 절대 볼거리가 되어서는 안 돼. 볼거리가 되는 순간, 나머지 모든 사람들을 구경꾼으로 만들어버릴 테니까. 그들을 원치 않은 구경꾼으로 만들어놓고 표값을 요구해선 안 돼. 그건 공포보다 강한 고통이 아니라 공포보다 강한 공포일 뿐이야." (중략)

"모든 사람들이 영향을 받을 필요는 없어요. 그중 일부만 바뀌어도 상관없는 일이겠죠. 국가 폭력에 대한 공포보다 타인의 고통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난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p. 191-192)


- ""저자가 쓰지 않은 글까지 읽는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말하지 않은 것들을 듣는다." (중략) "그런 점에서 책을 읽는 일차적인 목표는 자신이 뭘 모르는지 확실하게 아는 일이야." (중략) "천재적으로 책을 읽으려면 작가가 쓰지 않은 글을 읽어야만 해. 썼다가 지웠다거나, 쓰려고 했지만 역부족으로 쓰지 못했다거나, 처음부터 아예 쓰지 않으려고 제외시킨 것들 말이지. 그것까지 모두 읽고 나면 비로소 독서가 다 끝나는 거야. 책을 다 읽는 일은 하루면 끝나는 것인데, 평생 읽어도 다 읽지 못하는 책이 이 세상에 수두룩한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지."" (p. 233-234)


- ""나는 왜 죽음에 가까이 간 사람들은 공통된 감각의 변화를 겪는지 궁금했을 뿐이야." (중략) "하지만 이 세계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경험하고 나면, 그런 환상의 감각에서 벗어날 수 있어."" (p. 240)


- "벚꽃은 왜 그토록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일까? (중략) 그 푸른 그늘 아래에서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첫 숨을 들이켠다. 그중 하나가 여름을 북쪽 지장에서 보내는 북방쇠찌르레기들이다. (중략) 그러니까 봄에 아름답게 피었다가 진 벚꽃의 열매를 먹으며." (p. 244-246)


- ""이건 1986년에만 맛볼 수 있는 자유야. 여자가 종로 한복판에서 담배를 피워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날이 곧 올테니까."" (p. 260)


- "기적을 바라는 심정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 저는 이새인이라고 합니다. 독특한 이름이죠. 새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라고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기억하시나요?" (p. 294)


- "아버지, 이 편지를 읽으셨다면 지금 당장 제게 답장을 보내주세요. 아무리 늦어도 상관없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답장은 늘 늦게 도착한다는 사실쯤은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저는 언제까지라도 아버지의 답장을 기다리겠습니다." (p. 298)


- "우주에 그토록 별이 많다면, 우리의 밤은 왜 이다지도 어두울까요? 그건 우리가 지구라는 외로운 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중략) 그래서 지구는 고독합니다. 이 고독은 3천억분의 1의 고독입니다 (중략)

지금까지 지구에는 106,500,000,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걸. (중략)

1을 1천65억으로 나누면

0.0000000000093896713615023474178라는 숫자가 나온다.

0.0000000000093896713615023474178는 0이나 마찬가지다.

나란 존재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나의 밤도 지구의 밤처럼 어둡고 어둡기만 하다.

(중략)

그러므로 1천65억 개 중의 하나라는 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라,

아주 특별하다는 걸 뜻한다.

그렇다면 혼자라는 이유만으로 지구의 밤이 어두울 수는 없다.

그건 나의 밤도 마찬가지다." (p. 308-309)


- "137억 광년보다 더 떨어진 별들의 빛을 보기에 137억 살이란 나이는 너무나 젊습니다." (p. 313)


- "우리의 밤이 어두운 까닭은 우리의 우주가 아직은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p. 314)


- "그리고 1987년 여름이 되자,

베드로의 집에서 국영수를 가르치던 형들이 우리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완전히 다를 거라고.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만약 누군가 그런 짓을 하려고 든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뭐라도 할 것이라고.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우린 혼자가 아니라고. (p. 319)




몇 년 전에 누군가 물어봤었다. (그게 세영님이었던가, 다른 사람은 물어볼만한 사람이 많이 없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로 이렇게 시끄러운데, 넌 부를 줄 아냐고.
그때는 나도 제목만 알고 잘 알지 못 했었다.


하지만 지난 겨울의 광장에서 함께 부르며 알게 되었고,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늦었지만, 나도 이제 자신있게 부를 수 있다고.


영혼결혼식을 위한 곡이라는 걸 알게 되고 가사를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부르다 보면 비장하고 슬프다.



5년 전의 나는 무지했고 부족했으나 지금의 나는 그래도 조금 더 아픔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고,

한국 사회의 많은 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는 한국의 문화를 경험해보았으며,

작년 초여름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1968년부터 발행되었던 잡지의 내용을 한 페이지씩 보며 정리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겨울의 광장에 함께 했었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도 나는 나름 많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지난 여러 해의 경험을 통해 얻은 것들을 돌이켜보면 과연 많이 알고 있었던 건가 싶기도 하다.




사실 이 글은 세영님이 아니었으면 쓰지 않았을 글이다.

이 책에 관심을 두었을지도 불확실하고, 읽을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르겠고,

처음 책을 받았을 때부터 감상문을 써오라는 글이 써있었고, 여러번 감상문을 내놓을 것을 독촉(?)받았던지라

그래도 기록에 남겨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 글을 이곳에 써두고 이 링크를 달아 자신있게 먼저 보여주는 건 왠지 너무 보여주기 위한 글인 것 같고,

언젠가, 몇 달 후 혹은 몇 년 후에 한 번쯤은 접속해서 읽어보지 않을까?


'원더보이'에서 정훈의 엄마가 이북에 있는 아버지에게 쓴 편지가 국제조류보호협회를 통해

17년이 지나고 나서 정훈에게 전달되었듯 언젠가는 읽을 때가 있으리라.. 라고 적어놓으면 너무 거창한 느낌인데!

그렇다고 이 글이 편지는 아니라서 꼭 전달될 필요가 있나? 싶지만, 그래도 언젠가 전해진다면 나쁠 건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읽으시면 연락주세요- 글이 너무 길어서 여기까지 오는 것도 일이겠다..



지금은 녹색 광선을 읽고 있지만 거의 다 읽었고, 곧 김연수의 7번 국도를 읽을 예정이다.

그 책도 여러 해 전에 추천해달라고 물어봤을 때 말해준 책이었는데 이제서야 구해볼 생각을 한다.

7번 국도는 원더보이 책 오른쪽 날개에도 나열되어 있

무슨 삼미슈퍼스타즈 그런 제목도 추천해주었던 것 같은데 그건 찾아봐야겠지



+

훈련소에 있을 때 김연수 작가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을 읽기도 했었구나

글에서 되게 기묘한 느낌이 들었던 기억은 나는데

Posted by 빵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