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연히 내 주변, 그리고 주변에서 가늘게 아는 사람들의 글과 작업들을 보게 되었다. 그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구나. 뭔가 항상 누군가의 글을 몰래 훔쳐본다는 건 재밌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가 가까이에 두고 싶은 사람이면 더욱 그렇다. 또 한 번 부럽기도 했고, 멋졌다. 사실 어디 즐겨찾기 해두고 틈틈이 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내가 무슨.. 그럴 일은 없다. 학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내가 원래 맡은 일부터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아무튼 한편으론 나도 그런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있나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크게 5가지의 글을 쓰고 있다.
1. 공식적이고 매우 격식있는 글.
2. 어떤 집단을 대표하여 무겁진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볍진 않은 글.
3. 그냥 쓸데없는 글자를 마구 섞어가며 그 날의 기록을 위해 쓰는 일기 또는 블로그 글.
4. 페이스북 따위에 쓰게 되는 어떤 문자, 모양이 주는 느낌을 살리는 글.
5. 이 밖에 오글거리는 말을 잘 쓰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격식이 생기는 글.
등등.
어떻게 분류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사실 매번 랩 세미나마다 비교표나 내 연구의 장점을 설명할 때 동등한 단계가 비교되지 못했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지금 이곳에서도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지난 6개월 동안은 주로 매우 격식있고, 공식적인 글을 썼다. 그 글은 내가 원해서 쓴 글도 물론 있었지만, 타의에 의해 쓰게 된 것이 많았다. 왜냐하면 굳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쓰지 않았을 글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인에 의해 자발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글을 쓰게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알게 되었다.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한편으론 권력의 힘을 느끼고 있다.
전 세계에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그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열심히 소리치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가져주는 목소리는 매우 소수이다. 어떤 미디어에서 주목을 해주거나, 어떤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면 쉽게 다른 사람들이 들어주지 않는다. 요즘 소셜미디어가 매우 발달했다고 하지만 그 역시 한계가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본인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파업을 하고, 시위를 하고, 분신자살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불편을 주는 대신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무조건 불편한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런 사람들은 도리어 더 큰 약자가 되기 마련이다. (그런 어려움을 알고 있어서인지 누군가 파업을 하고, 시위를 해서 내가 불편하더라도 나중에 내 목소리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때 그렇게 하면 누군가 나에게 조금이나마 귀 기울여줄 것을 알기에 그런 불편함은 얼마든지 감수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목소리가 묻혀서 누군가의 귀기울임을 기다리고 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누군가 이미 스포트라이트를 켜놓은 그 위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내가 글을 쓰기만 하면 어떤 권력이라는 이름 위에서 내가 부탁하지 않아도 먼저 글을 읽어주었다.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기도 했고, 지금까지 쉽게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고,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6개월 간의 활동이 마무리되어 간다. 처음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지만, 어떻게든 끝이 난다. 처음 시작은 독일에 있을 때였다. 무슨 재밌는 일 없을까 찾아보다가 재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접수 마감하는 날 지원하게 되었고(게다가 시차 때문에 나는 자정이 아닌 오후 5시까지 제출해야 했다.) 면접도 없었고. 아무튼 귀국한 바로 다음날 첫 만남. 그리고 첫번째 글은 1달 후. 아니 1달 반 후. 그 당시 해당 내용이 빨리 올라가야 한다는 이야기 때문에 번역하느라 밤을 새고, 글을 쓰는데에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당시 글을 적당한 길이로 줄여서 요점만 보여주는 것이 좋을지, 모든 내용을 하나하나 꼼꼼히 담아내는 게 좋을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는데 아무도 그 고민에 대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결국 나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담아내고자 했고, 내 스스로는 정말 만족할 수 없는 글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칭찬을 받았다. 왜일까. 당시엔 그게 좀 의문스러웠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물이 다른 사람에겐 칭찬을 받는다는 게 스스로에게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어쨌든 그 글은 끝이 났고, 다시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새로운 글은 나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서 그런지 쉽게 써졌는데, 문제는 후처리 과정에서 생겼다. 보통 내가 '생산'한 글은 몇가지 수정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 수정과정에서 내 글이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가 되었는지 제목의 의미가 아예 맞지 않게 변해버렸다. 그때 바로 연락을 드려서 원래 내가 하고자 했던 말로 고치긴 했지만, 그 당시엔 꽤나 당황스러웠다. 내가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해서 그걸 읽는 사람이 이해를 제대로 못 한 건가. 라는.
그 이후에 쓴 글들은 사실 잘 썼다고 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과 같이 쓰는 글쓰기에서는 내가 먼저 포기해버린 부분이 있었고, 다른 글들은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글이 아닌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글쓰기를 하게 되다 보니 문제가 있었다. 내가 어느 행사에 참석하여 그저 받아쓰기만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또한 그토록 동경해오던 기자라는 직업이 쉬운 일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작년 봄, 아니 재작년 가을. 교환학생을 계기로 정리된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하지만 절실함도 없었고, 그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글쓰기는 정제되지 않는 날 것의 글쓰기가 되었고 정리하기 어려운 그런 글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얼마 전 당시 마감이라는 압박에 못 이겨 검토, 퇴고를 제대로 하지 못한 글이 있었다. 시간이 나면 해야지, 해야지.. 했지만 1주일이 지나도록 아직 하지 않았다. 언젠가 그 글도 세상에 빛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시간에 쫓겨 또 하게 되려나.
그런데 이것에는 딜레마가 있다. 김영하 작가의 TED Talk을 보면 한예종에서 글쓰기가 전공이 아닌 학생에게 글을 미친듯이 쓰도록 강요(?)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다보면 그 글을 쓰는 학생은 몰아지경에 빠지고, 뭘 쓰는지도 모르고 쓰게 된다고 했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드려는 악마가 그런 예술적 행위를 방해한다고 했다. 예술적으로 보면 우리가 처음 만든,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은 글이 오히려 더 살아있고, 신선하고 더 좋은 글인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이렇게 수십번 하는 검토와 퇴고는 의미없는 일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들도 다 나의 예술가 행을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무튼 이제 마지막 글을 쓰고 있다. 사실 저장해둔 것이 날아가버린 줄 알고 아까 좌절했지만- 다행히 이전에 써둔 것이 조금 살아있었다. 하지만 이 글도 아직은 마음에 그리 들지 않는다. 이렇게 쓰는 게 맞는걸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사실 마지막 글을 쓰게 된 건 스스로 느끼게 된 답답함 때문이기도 했다. 예전에도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는데.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고 싶어서 찾아보는데 영어로 된 자료 밖에 없는거다. 뭐 물론 요즘엔 그런 자료가 더 나은 점이 있고 영어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할까 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한국어로 더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다들 어디선가 경험을 이미 해보아서 블로그 같은 곳에 조금씩 언급되어 있었다. 하지만 명확하게 정리된 곳은 없었다. 명확하게 정리된 페이지는 이제 막 생기고 있었는데 일반 사용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글을 써서 자료를 만들어야지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권력이라는 플랫폼 위에서 글을 쓰게 되었고, 실제로 검색을 해보면 내가 쓴 글이 권력의 힘을 가지고 위에 나온다. 마치 돈 노만 할아버지가 TED Talk에서 말했던 것처럼. 물론 한국어 컨텐츠가 없던 탓도 있다.
마지막 글을 마무리하는 순간을 미루고미루고 또 미루고 있는데, 그래도 오늘 잠들기 전엔 끝날 것 같다.
독일에선 맥주와 함께 숙제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 이 순간엔 맥주와 함께 마지막 글을 쓰고 있다. 사실 이 글은 엄밀하게 말하면 클라이언트의 요구는 아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 조건은 이미 다 채웠는데,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거다. 과연 얼마나 효과적일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끝나간다. 권력의 힘을 업은,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받은, 누군가 나의 목소리를 쉽게 들어주는, 수많은 고민을 하며 자발적으로 쓰여지지 않던,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지만 많은 고민도 함께 안겨주었던, 몰아지경에 빠지지 못했던, 악마가 자꾸 방해했던 글을 쓰던 날들.
잘 쓰고 싶다. 절제되어 있지만, 세련되어 있고,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무게감 있는.
* 아 수정하고 다시 쓰다보니, 이 블로그의 시계가 독일 시간으로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도 미처 다시 되돌려놓지 않았네-